사진/카메라

카메라의 역사(History of the camera)

하늘이푸른오늘 2011. 10. 5. 10:09
카메라의 역사는 사진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사진용 카메라의 기원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이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s), 칼로타입(calotypes), 건판(dry plates), 필름(film),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s)와 같은 다양한 기술로 변화를 계속해왔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s)


사진용 카메라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부터 개발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기원은 고대 중국 및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바깥경치가 바늘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투사면에 도립상(아래위를 뒤집은 영상)으로 투영되는 장치이다. 과학자이자 승려인 로저 베이컨(Roger Bacon)도 이에 대해 연구하였다. 1267년 출간된 베이컨의 원근법(Perspectiva)에는 어떻게 악마가 마술로 바늘구멍을 통해 자기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기술하는 이론적 소재가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직접 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544년 1월 24일, 수학자이자 기기제작자인 루벤대학교(Leuven University) 라이너 겜마 프리시우스(Reiners Gemma Frisius)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일식을 관측하고, 다음해 출간한 "De Radio Astronimica et Geometrico"에 그 방법을 도면으로 남겼다. 1588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ovanni Batista della Porta)는 이 장치가 그림을 그릴때 유용하다고 최초로 추천하였다. 

사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손으로 따라 그리는 것 이외에 이 장치에 투영된 영상을 보존하는 방법이 없었다. 초기의 카메라는 한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방 크기였으나, 점차 작은 형태로 진화하여 니엡스(Niépce) 당시에는 사진 촬영에 적합할 정도의 휴대용 카메라를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1685년 요한 잔(Johann Zahn)은 사진용으로 적합한 소형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하였지만, 사진술은 그로부터 150년 후에야 실용화 되었다.

초기의 사진


1817년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는 직접 제작한 카메라를 이용해 최초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하지만 이 사진은 영구적이 아니었고, 빛을 받으면 희미해졌다. 1827년 그는 프랑스 파리의 찰스 쉬발리에 및 빈센트 쉬발리에(Charles and Vincent Chevalier)가 제작한 슬라이딩방식 나무박스 카메라를 사용해 최초로 영구적인 영상을 제작하였다, 그 사진은 백랍판에 역청(bitumen, 아스팔트)을 코팅한 후 빛에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다. 빛을 쏘인 역청은 굳어지는데, 굳지 않은 부분을 녹여내면 사진이 완성된다.

"르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 (1827년), 니세포르 니엡스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s)과 칼로타입(calotypes)


루이스 다게르(Louis Daguerre)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 다게르의 동업자이지만 발명이 완성되기전 세상을 뜸)는 1836년 최초의 실용적 사진기술인 다게레오타입을 발명하였다. 구리판에 은을 코팅한 후 요오드 증기를 쏘이면 빛에 민감하게 된다. 촬영후 수은 증기를 이용해 현상하고, 진한 소금물로 정착시켰다. 윌리엄 폭스 탈보트(William Fox Talbot)는 1840년 칼로타입(calotype)이라는 다른 프로세스를 개발하였다. 이때 사용된 카메라는 잔(Zahn)이 개발한 모델을 기반으로, 촬상면 앞에 감광판 또는 감광용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슬라이딩 박스를 사용하여 초점을 맞첬다.

습판(Wet plates)


1851년에 개발된 콜로디온 습판법(Collodion wet plate process)은 영국의 조각가였던 프레드릭 스코트 아처(Frederick Scott Archer)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초상사진가들이 사진을 찍기위해서 칼로타입을 응용할 경우 특허료를 지불해야만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점차 콜로디온 습판 프로세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들이 부각되어 인기를 누렸다. 콜로디온은 알콜과 에테르에 니트로셀룰로스를 녹여만든 점액질 용제로, 빠른 시간내에 건조되어 방수막을 띤 막을 형성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유리판에 유제를 바를때 손가락과 손목을 매우 유연하게 움직여야 했으며, 콜로디온이 건조해지기 전 축축한 상태에서 노출과 현상과정을 끝내야만 했다.

이로 인해 콜로디온 습판법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으려면 완전한 암실이 바로 옆에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특히 야외촬영을 나갈때는 사진을 찍는 장소마다 암실 전체를 운반해야 하는 수고를 치뤄야만 하나의 사진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콜로디온 습판은 다게레오 타입에서 이룰 수 없었던 복제 가능성과 칼로타입에서 이룰 수 없었던 정밀함 이 두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건판(Dry plates)


1855년 Désiré van Monckhoven에 의해 콜로디온(Collodion) 건판이 개발되었으나, 1871년 리차드 리치 매독스(Richard Leach Maddox)가 젤라틴(gelatin) 건판을 개발한 이후에야 습판식에 비해 품질과 속도가 경쟁력이 갖춰졌다. 아울러 카메라를 손에 들거나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었다. 이때로 부터 단렌즈반사식, 이렌즈반사식 에서 아주 큰 현장 카메라, 포켓용 카메라, 심지어는 시계나 모자 등의 물건 모양을 한 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가 제작되었다. 노출시간이 짧아지자 캔디드(candid)사진이 가능해지면서 또다른 발명품이 기계식 셔터가 필요하게 되었다. 최초의 셔터는 별도의 악세서리였지만, 19세기말에는 내장형 셔터가 널리 사용되었다.

코닥과 필름의 탄생(Kodak and the birth of film)


사진 필름은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1885년 종이 필름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889년 샐룰로이드(celluloid)로 전환했다. 이스트만 최초의 카메라 "Kodak"은 1888년 발매되었다. 고정초점렌즈에 셔터스피드가 하나뿐인 아주 간단한 박스카메라였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일반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Kodak 카메라에는 100장을 촬영할 수 있는 필름이 미리 탑재되어, 모두 촬영하면 공장에 보내 현상, 필름을 재탑재 해야했다. 19세기말까지 이스트만은 박스카메라 및 주름식 카메라를 포함한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였다.

1900년, 이스트만에서는 스냅샷 개념을 소개한, 간단하면서 매우 저렴한 브라우니(Brownie)로 대량시장을 열었다. 브라우니는 매우 인기가 높았고, 1960년대까지 여러가지 모델이 판매되었다.

필름은 또한 영화용 카메라를 비싼 장난감이 아닌 실용작인 상업적 도구로 거듭날 수 있게 하였다.

이스트만에 의하여 저가 사진 시장이 커졌지만, 건판 사진기는 고품질 인화를 제공하여 20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한번 탑재하면 여러장을 촬영할 수 있는 롤필름 카메라에 대항하기 위해, 이 시대부터 많은 저가형 건판 사진기에 여러장의 건판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매거진(magazine)을 장착하였다. 건판 사진기에 롤필름을 사용할 수 있거나, 롤필름 카메라에 건판을 사용할 수 있는 보조백(back)도 판매되었다.

슈미트 카메라(Schmidt cameras)와 같은 특수 카메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문 천문카메라(astrograph)는 전자 사진기가 등장할 때까지 건판을 사용하였다.

35 mm


라이쯔(Leitz) 연구개발 책임자인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은 고품질 확대가 가능한 컴팩트 카메라를 개발하던중, 35mm 영화용 필름을 일반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는지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1913년경 35mm 카메라 원형(Ur-Leica)를 개발했지만, 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몇년간 개발이 연기되었다. 라이쯔에서는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시제품을 개발 시험했는데,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1925년에 Leica I 이라는 명칭으로 양산에 들어갔다. 라이카의 성공으로 많은 경쟁자가 생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경쟁자는 콘택스(Contax, 1932년부터 생산)였다. 이후 35mm 는 고급형 컴팩트 카메라를 위한 포맷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Leica I, 1925

코닥은 1934년 Retina I 모델로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모든 현대 35mm 카메라가 사용하고 있는 135 카트리지를 최초로 적용하였다. 레티나가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35mm 카메라는 언감생심이었고, 대부분 롤필름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936년 처음 소개된 저렴한 아르구스 A(Argus A)에 의해 변하기 시작하였고, 1939년 매우 인기가 있었던 아르구스 C3(Argus C3)의 등장이후 한층 더 많이 변화하였다. 저렴한 카메라는 계속 롤필름을 사용했지만, 1966년 C3가 단종될 당시에는 35m 필름이 거의 시장을 장악하였다.

일본의 카메라 산업은 1936년 캐논 35mm 거리계연동 커메라(rangefinder) 로 시작하였다. 이것은 1933년 콰논(Kwanon) 시제품을 개선한 것이었다. 일본 카메라는 한국전쟁에 참여하려고 일본에 주둔했던군인들이 미국 등지로 가지고 들어오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일안 반사식(SLR) 및 이안 반사식(TLR) 카메라


최초의 실용적 반사식 카메라는 1928년 Franke & Heidecke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중형 이안반사식(TLR) 카메라이다. 그 이전에도 일안반사식과 이안반사식 카메라는 수십년간 존재했지만, 대중적이기엔 너무 부피가 컸다. 그러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는 어느 정도 소형화에 성공하여 널리 인기를 얻었으며, 중형 TLR 카메라가 고급형 및 저급형 양쪽 모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일안반사식에서도 127 롤필름을 사용한 소형 SLR인 Ihagee Exakta 가 시판되면서 이와 비슷한 혁명이 일어났다. 이어 3년후에는 서방 최초의 35mm 용 SLR인 Kine Exakta 가 발매되었다. (세계 최초의 35mm SLR은 소련의 "Sport" 였지만, 고유한 필름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35mm SLR 카메라는 즉시 인기를 얻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양한 모델과 혁신적인 기능이 도입되었다. 35mm TLR도 몇몇 있었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35년 콘타플렉스(Contaflex) 였지만 성공을 거둔 제품은 거의 없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SLR에 반영된 가장 중요한 혁신은 눈높이에서 촬영가능한 뷰파인더(eye-level viewfinder)로서, 1947년 헝가리산 듀플렉스(Duflex)에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1948년에 발매된 콘택스(Contax) S에는 오각프리즘(pentaprism)이 최초로 적용되었다. 이 이전의 모든 SLR은 허리높이의 초점스크린만 있었다. 듀플렉스는 또한 최초로 즉시반환거울(instant-return mirror)이 탑재되어 매번 촬영할 때마다 뷰파인더가 닫히는 불편을 없앴다. 아울러 이 시대에 수십년간 중형 카메라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Hasselblad 1600F가 출현했다.

1952년에는 아사히광학(후일 펜탁스(Pentax)카메라로 유명해짐)에서 일본 최초로 35mm를 사용하는 SLR인 아사히플렉스(Asahiflex)를 출시하였다. 또한 1950년대에는 캐논(Canon), 야시카(Yashica), 니콘(Nikon) 등 여러 일본 회사들이 SLR 시장에 뛰어들었다. 니콘의 신작인 Nikon F는 여러가지 교환 가능한 구성품과 악세서리가 갖추어져 있어, 일반적으로 최초의 시스템 카메라라고 불린다. 거리연동계식(rangefinder) 카메라인 S 시리즈와 함께 F 시리즈는 니콘(Nikon)이 고급 장비 제작사라는 명성을 획득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Nikon F of 1959 — the first system camera

즉석 카메라(Instant cameras)


일반 카메라들이 점점 정밀해지고 복잡해지는 동안, 1948년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카메라가 등장하였다. 세계 최초의 즉석 카메라인 폴라로이드 Model 95가 바로 그것이다. 발명가인 에드윈 랜드(Edwin Land)를 따라 랜드카메라라고도 불렸는데, 특허를 받은 화학공정을 이용해 촬영 1분만에 양화사진을 제작하였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랜드 카메라(Land Camera)는 많은 인기를 끌어, 1960년대 폴라로이드 모델은 수십가지에 달하였다. 대중 시장을 향한 최초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1965년 발매된 Model 20 Swinger 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최고판매고를 달성한 카메라중의 하나이다.

자동화(Automation)


최초로 자동노출 기능이 들어간 카메라는 셀레늄 측광기(selenium light meter)를 탑재한 1938년에 나온 전자동 슈퍼 코닥(Super Kodak) Six-20이었지만, 매우 고가($225, 현재가로 $3,507)이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저가의 전자부품이 흔해지고 측광기와 자동노출계를 탑재한 카메라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다음번 기술적 진보는 1960년대로서, 정확한 측정을 위하여 렌즈 뒤쪽에 측광기를 설치한 독일의 초소형카메라(subminiature) Mec 16 SB 이었다. 그러나, 렌즈를 통한(TTL: through-the-lens) 측광은 SLR에 널리 적용된 기술로, 최초의 TTL 탑재 SLR은 1962년산 탑콘(Topcon) RE Super 이었다.

Digital cameras


디지털카메라는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주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메모리카드나 내부저장장치에 보관한다는 차이가 있다. 디지털카메라는 운영비용이 낮아 화학식 카메라를 틈새 시장으로 밀어내었다. 현재 디카에는 사진의 공유나 인쇄를 위하여 Wifi, 블루투스(Bluetooth) 등 무선통신기능을 탑재하는 등 많은 기능이 포함되고 있으며, 모바일폰에도 널리 탑재되고 있다.

아날로그 전자카메라(Analog electronic cameras)


들고 다닐 수 있고 필름카메라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기라는 의미의 "포켓용 전자 카메라"는 1981년 소니 마비카(Mavica:  Magnetic Video Camera)로 처음 나타났다. 이 카메라는 비디오테이프 기기와 마찬가지로 픽셀 신호를 연속적으로 저장하며, 디지털화 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카메라이었다. 2 × 2 인치 "video floppy"에 텔레비전과 비슷한 신호를 저장하였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프레임을 저장할 수 있는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의 품질은 그 당시의 텔레비전과 동일하였다.

 Sony Mavica, 1981

최초로 출시된 아날로그 전자 카메라는 1986년의 캐논 RC-701 이다. 1984년 올림픽 당시 시제품을 선보이고, 그 사진을 요미우리 신문에 실었다. 미국에서 이 카메라를 실제 리포트에 사용한 것은 USA Today의 월드시리즈 야구시합이었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우선 가격($2만 이상)이 비싸고, 품질이 필름에 비해 형편 없었으며 적당한 프린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진을 뽑아내려면 프래임그래버(frame grabber)같은 장비가 필요했으나, 일반인들은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후일 "video floppy"를 읽을 수 있는 장비가 여러가지 등장했지만, 컴퓨터 주변기기로 표준화되지는 못하였다.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는 주로 언론사로서, 영상을 전화로 송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격이 비싸다는 약점을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 품질이 떨어져도 신문에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위성을 통하지 않고 영상을 보내는 장점은 1989년 천안문 사태나 1991년 걸프전때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 정부기관에서도 정지비디오(still video)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미해군은 실시간 공대해(air-to-sea) 감시체계에 응용하고자 하였다.

최초의 소비자용 아날로그 전자 카메라는 1988년에 출시된  Canon RC-250 Xapshot 이었다. 주목할만한 아날로그 카메라는  Nikon QV-1000C로서 방송용으로 설계되었으며, 일반인에게 판매되지 않아 수백대 가량만 판매되었다. 이 제품은 영상을 흑백 계조로 저장하여 신문에서는 품질이 필름 카메라와 동일하였다. 생김새는 현대식 DSLR과 비슷하였고, 이미지는 video floppy disk에 저장되었다. 

1988년 후반에는 35mm 필름 카메라에 끼우기만하면 디지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실리콘필름(Silicon Film)이라는 디지털 센서 카트리지가 소개되었다. 실리콘필름은 렌즈 뒤쪽에 130만화소의 센서가 있고, 카메라 필름 홀더엔 건전지와 저장장치가 있는 형태로, 35mm 필름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었다. 그러나이 제품은 발매되지 않았고,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발전 및 가격하락에 따라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 기술을 소유한 모회사는 2001년 파산하였다.

진짜 디카의 출현(The arrival of true digital cameras)


이미지를 컴퓨터 파일로 저장하는 최초의 진정한 디지털카메라는 1988년의 후지사의 DS-1P인 듯하다. 이 카메라는 영상을 배터리가 있을 때만 저장할 수 있는 16MB 내부메모리에 저장하였다. 미국에는 판매된 적이 없으며, 일본에서 판매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1991년 코닥에서는 전문가용 DCS SLR 시리즈의 첫제품인 Kodak DCS-100을 출시하였다, DCS 시리즈는 니콘 등의 필름 카메라 바디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Kodak DCS-100 는 130만 픽셀로 가격은 $13,000 이었다.

1988년 JPEG 및 MPEG 표준이 제정됨으로써, 디카의 파일 포맷이 쉽게 정착될 수 있었다. 카메라 뒷면에 최초로 LCD(liquid crystal display)을 부착한 디카는 1995년의 Casio QV-10 이었고, 컴팩트플래시(compact flash)를 최초로 채택한 것은 1996년의 코닥 DC-25 이었다.

일반소비자용 디카 시장은 원래 저해상도이었다. 1997년에야 1백만 화소를 초과한 소비자용 디카가 판매되기시작했다.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최초의 디카는 1995년의  Ricoh RDC-1이었다.

1999년에는 274만 픽셀의 니콘 D1이 출시되었다. 최초로 대형 카메라업체가 단독으로 제작한 SLR로서 가격도 $6,000 이하로 전문가 혹은 고급아마추어가 구입가능한 수준이었다. 또한 이 카메라는 니콘 F마운트를 사용함으로써, 필카 사용자들이 기존 보유한 렌즈를 사용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 
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camera 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카메라의 역사를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문서도 있습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