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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렌즈라면 한점을 한점으로 (상대적 공간에서 절대적 정확도 이내로) 상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크기나 무게, 비용 등 실질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물리학 법칙, 우리 지식의 한계, 공법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완벽한 렌즈는 불가능하다. 카메라 렌즈 역사중 최초의 100년은 렌즈의 여러가지 렌즈 수차(optical aberration)를 무난한 정도 까지 떨어뜨리면서, 광학 지식이 천천이 축적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100년은 그 지식을 기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렌즈가 다양해지면서도 다재다능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아래에 있는 그림에서 렌즈 곡률이나 간격 등은 모두 개략적이다. 재료도 유리가 아닐 수도 있다. 즉, 이 그림만으로는 실제 렌즈를 제작할 수 없다. 참고로, 렌즈의 이름은 모두 상표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중 많은 렌즈가 아직 지적재산권에 걸려 있는 상태로, 이 글에서는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한다.
카메라 렌즈의 역사는 월라스톤(Wollaston)의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로부터 시작된다. 1804년 영국의 윌리엄 월라스톤(William Hyde Wollaston)은 1매짜리 메니스커스 렌즈(Meniscus lens, 요철렌즈)를 발명하였다. 처음에는 안경에 사용되었다. (자신이 원시라면 안경알을 시험해 보시길) 이 렌즈는 상당히 넓은 범위(f/16에서 약 50° 정도)에서 어느 정도 뚜렷한 상을 맺는 최초의 렌즈였다. 월라스톤은 1812년 이 렌즈를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장착시켰다.
메니스커스 요철렌즈는 오목한 면을 앞쪽으로 하고 그 앞에 조리개를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사진용 렌즈로 불리우게 되었다. 프랑스의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최초의 사진 기법인 "heliography"을 시험한 몇몇 카메라 옵스큐라에 이 렌즈를 부착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역사 참조) 메니스커스 렌즈는 1550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스타(Giambattista della Porta)가 카메라 옵스큐라에 부착한 간단한 양면볼록렌즈(biconvex lens)의 한계였던 상면만곡(field curvature)을 해결하였다. 참고로, 니엡스는 1828년까지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다. 즉, 1827년 경 역청(bitumen)을 사용한 최초의 사진을 촬영할 때는 양면볼록 렌즈를 사용했다. 메니스커스 렌즈는 코닥의 베스트셀러였던 브라우니(Brownie)와 같이 간단한 박스형 사진기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니엡스와 루이스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프랑스)는 동일한 업자(샤를 세발리에, Charles Chevalier, 프랑스)로부터 렌즈를 공급받았다.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사진도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하여 실험하였다. 하지만, 유리는 빨강 스펙트럼에서 파랑 스펙트럼으로 갈수록 굴절률(refractive index)이 커지고, 그 결과 파란색은 앞쪽에 초점이 맺히고, 빨강색은 상 주변에 무지개 장식 같은 얼룩을 만들게 된다. 이는 색 수차(chromatic aberration)에 의한 영향이다. 메니스커스 렌즈에는 이와 같은 색 수차를 보정할 방법이 없어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다게레오타입은 파란색에 감광하는데, 사람의 눈은 주로 노란색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세발리에(Chevalier)는 1829년 돌랜드(Dollond)의 아크로매트 이중렌즈(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원래는 망원경용)를 사용하도록 제안했다. 이 렌즈는 원래 메니스커스 렌즈보다 선명도가 떨어졌지만, 굴절률이 낮고 분광(dispersion)이 낮은 크라운(crown (소다석회, soda-lime)) 렌즈와 굴절률이 높고 분광(dispersion)도 높은 플린트(flint (납, lead)) 렌즈를 결합함으로써, 개별 색수차를 상쇄시키고 파란색과 노란색을 한군데에서 초점이 맞도록 한 렌즈이다.
현대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약 1900년 이후)는 파란색과 빨간색-특히 486 / 656 나노미터-을 한 점에 모으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존 돌랜드(John Dollond, 영국)가 1754년에 이 사실을 발견하여,1758년에 영국 왕립 학회(British Royal Society)로부터 코플리 메달(Copley Medal)을 수상하였지만,(1966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색수차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음) 아크로매트(Achromat) 렌즈를 개발한 사람은 1729년 체스터 홀(Chester Moor Hall)이었다.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 렌즈는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공식 다게레오타입 설명서에 지정된 렌즈였다. 세발리에는 1839년 말부터 아크로매트 렌즈에 메니스커스 렌즈를 추가하여, 상면만곡(field curvature)과 색수차(hromatic aberration)를 조절함으로써, 19세기 야외용 표준 렌즈인 아크로매트 풍경(Achromat Landscape)렌즈를 개발하였다.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최대구경이 f/16 으로, 야외 다게레오타입 촬영에 20-30분 소요될 정도로 느렸다. 그래서 1840년 프랑스 국가산업진흥회(Society for the Encouragement of National Industry)에서는 밝은 렌즈를 국제공모하였다. 조셉 벳시바르(Joseph Petzval, 현재 헝가리)은 광학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수학교수였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의 "인간 컴퓨터(human computer)"의 도움을 받아 다게레오타입 인물촬영(daguerreotype portrait)에 적합할 정도로 빠른 렌즈에 도전하였다.
그는 1840년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 개발에 성공하였다. 전면은 접합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 후면은 간격을 떨어뜨린 아크로매트 렌즈로 구성된 4매 렌즈로, 최초의 대구경(f/3.6) 인물용 렌즈였다. 그늘진 야외에서 다게레오타입 노출시 1-2분 정도 걸렸다. 1851년 개발된 콜로디온(colloidion ) 습판식에 사용할 경우 실내에서도 1-2분 정도로 가능하였다. 하지만 벳시바르 인물렌즈는 다른 렌즈보다 훨씬 우수했음에도 국수주의로 인하여 상을 타지 못했다.
초점거리 150mm인 벳시바르 렌즈는 1841년에 원뿔형 금속제 보이그랜더(Voigtländer, 현재 오스트리아) 카메라에 탑재되어 원형 다게레오타입을 촬영하였다. 보이그랜더-벳시바르는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를 변형한 것이 아닌, 사진 촬영 전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카메라와 렌즈였다. 이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는, 그후 거의 100년간 가장 뛰어난 인물사진용 렌즈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렌즈에는 심각한 상면만곡(field curvature)오차와 비점수차(astigmatism)가 있었다. 중심부(약 20°, 매우 중요할 경우 10°)는 선명하였지만, 바깥쪽은 급격하게 초점이 어긋나서 피사체 주위로 "유쾌한" 할로 현상(halo effect)이 나타났다. 벳시바르 인물렌즈는 현재에도 상면 만곡이 문제시 되지 않는, 좁은 각도의 투영렌즈로 인기가 높다.
이 렌즈는 여러 렌즈 회사들이 불법적으로 복사했고, 벳시바르은 피터 보이그랜더(Peter Voigtländer)와 로열티 문제로 추악한 분쟁에 빠져들어 결국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이 인물렌즈가 최초의 수학적 계산에 의한 렌즈였고, 1856년부터는 Hugo Adolph Steinhei(현대독일)에서 근무한 Ludwig von Seidel(현대 독일)에 의해 물리적 계산식이 잘 정립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약 반세기 동안 사진렌즈는 시행착오법을 통해 개발되었다. 렌즈 발전에는 퇴행적인 손해였다.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또한 직선이 곡선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 왜곡이 아주 심했다. 사진이 개발된 초기에는 촬영시간이 오래 걸려 음직이지 않는 건물이 아주 중요한 사진 주제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 당시는 그림엽서가 19세기 중반에 개발되었을 정도로, 가보기 힘든 곳의 사진(특히 입체사진)은 안락한 집에서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기가 좋았다. 왜곡은 화각이 커질 수록 급격히 나빠졌다. 따라서 아크로매트 풍경렌즈는 광각 렌즈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광각렌즈(최대 92°, 실용적으로는 80°)는 1892년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미국) 이었으나, 최대구경이 f/16(실용적으로는 f/30)에 불과했다.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가 개발한 글로브 렌즈는 4매의 대칭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일 바깥쪽 면을 확장하면 완전한 구가 된다.
1850년, 대칭(Symmetry)을 사용하면 깨끗한 상을 방해하는 일곱가지 렌즈 수차(5가지 모노크롬 "자이델(Seidel)수차" (구면수차(spherical), 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와 2가지 색수차(축방향(axial) 및 횡방향(transverse))중에서 3개의 수차(직선왜곡, 코마, 횡방향 색수차)가 자동적으로 보정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제조상의 결함으로 인하여 중심이탈(decentration) 수차도 발생한다. 즉, 렌즈가 사양에 따라 제작되지 않았거나, 위치가 어긋나면 기대한 품질을 얻을 수 없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연마불량 혹은 위치 불량에 한층 민감해진다.
영상의 품질을 떨어뜨리지만 수차 혹은 오류가 아닌 광학 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cos4θ만큼 상이 어두워지는 자연 비네팅(natural vignetting) 현상이나, 광각렌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가장자리 확대현상, 혹은 건물이 사다리꼴로 나타나는 현상 등은 3차원 피사체를 2차원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효과일 뿐, 물리적 오류가 아니다.
글로브 렌즈의 대칭식은 달메이어(Dallmeyer) Rapid-Rectilinear 렌즈와 슈타인하일(Steinheil) Aplanat 렌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우연히도 존 달메이어(John Dallmeyer)의 Rapid-Rectilinear 와 아돌프 슈타인하일(Adolph Steinheil)의 Aplanat는 거의 동일한 4매 대칭식으로, 1866년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들 렌즈는 구면수차(spherical) 및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학수차를 제거한 f/8 렌즈였다. 굴절률(refractive index) 차이를 최대로 하되, 각 아크로매트에서 분광(dispersion)을 동일하게 유지한 것이 돌파구였다. Rapid-Rectilinear 과 Aplanat 은 그 당시 모든 필름 포맷에 대해 초점거리와 화각에 확장가능했으므로 이후 약 50년간 표준적인 중구경 범용렌즈로 사용되었다.
아크로매트 풍경 렌즈(Landscape), 벳시바르 인물렌즈(Portrait),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및 Rapid-Rectilinear/Aplanat 등 4개의 렌즈는 19세기 사진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했던 렌즈였다.
조리개가 영상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1500년대에 알려졌다. 조리개구경이 너무 작아 회절이 심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조리개를 쓰면 여러가지 횡방향 수차(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 및 횡방향 색수차(lateral chromatic)를 일으키는 주변부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렌즈는, 횡방향 수차와 회절이 타협하는 중간정도의 구경에서 최상의 품질을 생성한다.
따라서 심지어 메니스커스(Meniscus)렌즈조차 영구적인 조리개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의 렌즈에 있는 조리개는 조정기능이 없었다. 작동되는 구경자체가 작은데다, 다게레오타입은 민감도가 낮아서 몇 분씩 노출해야했기 때문이다. 사진사들은 입사광을 줄임으로써 노출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1951년 콜로디온 습판식(wet colloidion process)이 개발되면서 노출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졌고, 이에 따라 조리개조절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조리개는 1858년의 존 워터하우스(John Waterhouse)의 이름을 딴 워터하우스 스톱(Waterhouse stop)이었다. 동판에 정해진 크기의 구멍이 뚫어진 형태로, 렌즈 옆에 있는 홈에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1880년 경, 사진사들은 구경 크기가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조리개 조절기능이 훨씬 중요해졌고, 조절가능한 조리개가 표준 렌즈 기능이 되었다. 1880년대 아이리스 조리개(iris diaphragm)가 최초로 등장했고, 1900년대에는 표준 조리개가 되었다. 아이리스 조리개는 그 이전 19세기 초부터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널리 사용되었고, 니엡스(Niépce)도 실험용 카메라에서 한번 이상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대식 렌즈에 사용되고 있는 조리개는 1858년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에 의해 개발되었다. 해리슨과 슈나이처의 조리개는 열고 닫는 속도가 빨랐고, 이는 자동 조리개 카메라용 렌즈에 필수가 되었다.
현대 렌즈 조리개의 f값은 f/1, 1.4, 2, 2.8, 4, 5.6, 8, 11, 16, 22, 32, 45, 64, 90 등으로 표시되는데,1949년에 표준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영국식 시스템과 독일식 ( f/1.1, 1.6, 2.2, 3.2, 4.5, 6.3, 9, 12.5, 18, 25, 36, 50, 71, 100 등)이 경쟁했었다. 또한 통일 시스템(Uniform System, 미국, 영국에서 발명됨)은 1, 2, 4, 8, 16, 32, 64, 128 등(여기에서 미국1 = f/4, 미국2 = f/5.6, 미국4 = f/8 등)으로 표기했는데 20세기초 이스트만 코닥에서 선호하였다.
1매의 요소로 구성된 렌즈는 렌즈의 길이와 초점거리가 같다. 예를 들어 초점거리 500mm 렌즈는 렌즈부터 촬상면까지의 거리가 500mm이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확대 렌즈(군), 후면에 축소렌즈(군)를 조합하여 명목상의 초점거리보다 짧게 만든 렌즈이다. 즉, 전면부에서는 상을 과대굴절시키고, 후면에서 초점면을 회복함으로써 백포커스 길이(back-focus length, 렌즈 후면 정점으로부터 초점면까지의 거리)를 매우 단축시킨 것이다. 원래는 일반렌즈의 뒤에 부착할 수 있는 오목렌즈가 악세서리로 판매되었다. 1833년 피터 발로우(Peter Barlow)가 개발한 오목 색지움 확대렌즈(negative achromat magnifier)인 발로우 렌즈(Barlow lens)는 현재도 아마추어 망원경의 접안렌즈 배율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망원컨버터(teleconverter)가 발로우 렌즈이다.
1891년 토마스 달메이어(Thomas Dallmeyer)와 아돌프 미테(Adolph Miethe)는 전면에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후면에 아크로매트 삼중(achromat triplet)렌즈로 구성된 망원렌즈를 거의 동시에 동일한 수식과 함께 특허를 내려고 시도하였다. 누가 먼저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둘다 최초의 망원렌즈 특허를 받지 못했다.
초기의 망원렌즈는 전면부와 후면부가 균형잡히지 않았고, 후면부가 영상뿐만 아니라 수차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전.후면부 간격을 조정함으로써 유효초점거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이는 수차문제를 악화 시켰을 뿐이었다. 광학적으로 보정되고 시스템으로 확립된 최초의 망원렌즈는 1905년 f/8 Busch Bis-Telar(독일) 이었다.
사진렌즈는 1890년, 자이스(Zeiss, 독일)가 프로타르(Protar)를 개발하면서 한단계 도약하게 된다. 폴 루돌프(Paul Rudolph)의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성공적인 비점수차보정렌즈로, 당시 기준으로 비점수차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수차를 높은 수준으로 보정하였다. 이 렌즈는 f/4.5 인물용부터 f/18 초광각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 프로타르(Protar) 렌즈는 처음엔 Anastigmat(비점수차제거렌즈)라고 불렸으나, 이런 특성의 렌즈가 많아져 일반적인 용어가 되자, 1900년에 프로타르라는 기발한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현대식"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산화바륨(barium oxide) 기반의 크라운 유리(optical crown glass, 저굴절, 저분산 특성의 유리)를 사용하면서 비대칭 공식(asymmetric formula)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유리는 1884년, 칼 자이스(Carl Zeiss)의 Jena Glass Works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와 화학자 오토 쇼트(Otto Schott)가 개발하였다. 이 쇼트 유리는 소다석회 크라운 유리(soda-lime crown glass) 보다 분산은 낮고 굴절률은 높았다. 프로타르의 전면부는 예전 유리를 사용했으나, 후면부 아크로매트(색지움)렌즈는 고굴절 유리를 사용했다. 약 1930년대 이후에 생산된 거의 모든 고품질 사진렌즈는 비점수차가 보정되는 렌즈이다.
현재의 최첨단 카메라 렌즈는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ic)보다 대충 두배 정도 더 엄밀한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 APO) 이다. 하지만 그러한 렌즈들은 원래의 일곱가지 수차보다 훨씬 더높은 수준의 수차를 보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고굴절/저분산 희토류(산화 란탄(lanthanum oxide)) 렌즈, 형석(불화 칼슘(calcium fluoride)) 렌즈 등이 필요하다.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삼중색지움렌즈는 1964년 개발된 35mm SLR인 라이카플렉스(Leicaflex) 시리즈용 "Leitz APO-Telyt-R 180mm f/3.4(1975)" 이었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거의 모든 전문가용 망원렌즈는 삼중색지움렌즈이다. 참고로, 과학용/군용/산업용으로는 삼중색지움렌즈보다 더 뛰어난 렌즈도 있다.
20세기 카메라 렌즈의 전형은 Taylor, Taylor & Hobson의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이다. 데니스 테일러(Dennis Taylor, TTH와는 관련없음)가 개발한 쿠크 삼중렌즈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간단한 비대칭 3매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로, 새로운 쇼트(Schott) 유리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렌즈 설계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모든 요소가 너무 강하여 정렬불량에 매우 민감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상당한 제조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쿠크 삼중렌즈는 20세기의 "경제적인 렌즈"의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최고로 많이 팔린 거리계연동 카메라로 추정되는 1937년 미국의 아거스(Argus) C3에 장착된 Argus Cintar 50mm f/3.5 렌즈가 쿠크 삼중렌즈였다.
이 렌즈는 중형 롤필름 카메라의 밀착 사진이나, 35mm "미니어처" 포맷 카메라의 부분 확대에 적당하며, 대형 인화는 곤란하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의 필름은 해상도가 높지 않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타르(Protar) 렌즈의 성능이 불만족스러워 테사르 렌즈를 개발했다. (형태는 쿠크 삼중렌즈와 비슷) 테사르는 원래 f/6.3 이었지만, 1930년에 f/2.8(최고 성능은 f/3.5까지)로 개선되었다.
테사르는 고품질/중구경/평균원근감을 갖는 20세기 표준렌즈였다. 최초의 자동노출 카메라인 코닥(Kodak) Super Six-20 (1938)에 장착된 "Kodak Anastigmat Special 100mm f/3.5"가 테사르 렌즈였다. 또한 올림푸스의 오리지날 half frame 카메라인 Olympus Pen (1959)에 장착된 "D. Zuiko 2.8 cm f/3.5", 최신 롤라이(Rollei) 35(1974)에 장착된 "슈나이더(Schneider) S-Xenar 40mm f/3.5", 주류 카메라회사의 마지막 수동초점 35mm SLR인 Nikon FM3A (2001)에 장착된 "AF Nikkor D 45mm f/2.8P Special Edition" 등도 Tessar 렌즈였다. Zeiss Stiftung의 마지막 카메라인 Zeiss Ikon S 312에 "Zeiss Tessar 40mm f/2.8 (1972)"이 채택된 것은 썩 어울리는 일이었다.
라이츠(Leitz) 최초의 카메라인 Leica A (1925)에 장착된 "라이츠 엘마(Leitz Elmar) 50mm f/3.5"가 테사르(Tessar)라는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 라이카에선 18x24mm 무비카메라용 50mm f/3.5 Kino Tessar 를 개발했었고, 이것이 새로운 24x36mm 포맷에는 불충분했기 때문에 풀프레임을 지원하는 렌즈를 새로 개발해야했다. 50mm 테사르 렌즈가 24x36mm 포맷을 지원하게 된 것은 라이카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자이스 이콘(Zeiss Ikon)에서 콘택스(Contax)를 설계한 이후의 일이다. 엘마(Elmar)는 테사르(Tessar)와는 다른 계산식인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에 기반한 렌즈였다.
비점수차제거에 의하여 사진 품질이 향상되자, 그 다음으로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거나 셔터 속도를 올릴 수 있도록 구경을 키우는데로 관심이 쏠리게되었다. 자연광 스냅사진(candid available light photography)에 적합한 최초의 광각렌즈는 1923년 에르네만 에르노스타(Ernemann Ernostar, 독일)이었다.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의 공식은 원래 10cm f/2 렌즈였으나, 1924년에는 10.5 cm/85mm f/1.8 까지 향상 시켰다. 에르노스타 렌즈도 쿠크 삼중렌즈의 변종으로, 렌즈 앞에 볼록렌즈요소 혹은 그룹이 추가된 형태였다.
이 렌즈가 에르네만의 에르마녹스(Ermanox,1923) 카메라에 장착되어,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의 손에 들어가면서 현대적인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을 열었다. 프랑스 수상이었던 Aristide Briand 는 "국제회의에는 단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외국어 비서, 책상 그리고 잘로몬이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참고로 미국 사진기자들은 1950년대까지도 플래시를 사용했다.
베르텔레는 1926년 에네르만이 자이스에 합병된 뒤, 좀더 유명한 조나(Sonnar)렌즈라는 이름으로 에론스타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는 1932년 f/1.5까지 도달하여,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인 Contax I (1932)용 Zeiss Sonnar 50mm f/1.5 를 개발하였다.
조나(Sonnar)렌즈는 망원렌즈 설계로 유명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조나는 전면 확대부(front positive element)의 강력함으로 인해 약간 망원성이다. 예를 들어 Contax II(1936) 용 Zeiss Olympia Sonnar 180mm f/2.8은 전설에 가까운 명작이다.
1817년, 칼 프레드릭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프라운호퍼(Fraunhofer) 망원경 대물렌즈에 메니스커스(meniscus, 요철) 렌즈를 추가하여 개선하였다. 1988년 Alvan Clark는 이 렌즈를 앞뒤로 대는 형태로 좀더 개선하였다. 그는 가우스를 기려 이 렌즈를 더블가우스 렌즈(double Gauss)라고 명명하였다. 현재의 설계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 자이스 예나의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접합 이중렌즈(cemented doublets)를 중심렌즈로 사용하여 색수차를 보정하였다. [플라나(Planar) 렌즈]
이후 넓은 구경의 고성능 렌즈를 위해 렌즈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1920년대 Taylor Hobson에서 성과를 거두었는데, f/2.0 Opic 과 이후의 Speed Panchro는 많은 회사들에 라이선스 되었다. 이 디자인은 현재 사용되는 많은 렌즈의 기반이 된 바, 특히 35mm 및 기타 소형 카메라에 사용되는 대구경 표준렌즈의 기반이 되었다. 넓은 화각에 대해 f/1.4까지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뿐 아니라, 때로는 f/1.0 까지 만들어졌다.
이 디자인은 현재 Canon EF 50mm f/1.8 와 Nikon 50 mm f/1.8D AF Nikkor 와 같이 저비용 고품질의 빠른 렌즈에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렌즈 요소를 추가하여 더 빠른 렌즈의 기반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캐논과 니콘에서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50 mm f/1.4 를, 비구면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Canon's 50 mm f/1.2 를 제작했다. 또한 이 설계는 프로젝터와 같이 간단하고도 빠른 표준렌즈(~53° 대각선)가 필요한 다른 응용에도 나타난다.
표면 반사는 19세기 렌즈 설계시 주요한 한계 요소였다. 모든 유리-공기 접촉면 마다 4-8%의 반사가 발생하여 빛 투과가 줄어들고, 반사된 빛의 산란으로 플래어가 발생함으로써, 6번 혹은 8번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렌즈의 실용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일정한 수 이내의 요소로만 수차를 해결해야만 했었다.
일부 렌즈는 빛 손실을 표시하기 위해 f-stop 대신 T-stop (transmission stop)을 표시하기도 했다. T-stop은 "진짜" 혹은 실질적인 구경을 나타내며 영화용 렌즈에서는 흔했다. 영화 촬영기사들은 영화촬영시 어떠한 렌즈를 사용해도, T-stop을 참고로 일관성있는 노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진용 카메라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Bell & Howell의 Foton 라는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용 렌즈에만 T-stop이 표시되었다. Bell & Howell은 영화촬영장비 제조회사였다. Foton 의 표준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사의 Cooke Amotal Anastigmat 2 inch f/2 (T/2.2) (1948; 카메라는 미국제, 렌즈는 영국제, 더블가우스) 였다. f/2 와 T/2.2 사이의 1/4 스톱 차이는 16% 손실이었다.
데니스 테일러는 1896년, 세월이 흘러 변색된 렌즈가 직관과는 달리 더 밝아지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사결과 그것은 산화된 층이 상쇄간섭(destructive interference)을 일으켜 표면반사가 억제된 것이었다. 표면반사를 억제하기 위하여 아주 얇은 두께(약 130-140 nm)의 불화마그네슘 또는 불화 칼슘을 진공 침전(vacuum deposition) 방법으로 코팅한 렌즈를 발명한 것은 1935년 자이스의 알렉산더 스마쿨라(Alexander Smakula)였으며, 1939년 최초로 시판되었다. 반사코팅방지 코팅은 반사를 1/3로 줄여주었다.
1941년 코닥의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 Ektra 는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완벽한 반사방지 렌즈 라인인 Kodak Ektar 35mm f/3.3, 50mm f/3.5, 50mm f/1.9, 90mm f/3.5, 135mm f/3.8 and 153mm f/4.5 를 발표하였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소비자용 카메라 생산이 중단되어, 1940년대 말까지는 대량의 코팅렌즈는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부터는 코팅렌즈가 고품질 카메라의 표준이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이 등장하자 조나(Sonnar)렌즈에 비해 더블가우스(Double Gauss)가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기술이 없었던 이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조나가 더 널리 사용되었다. 조나의 경우 3군. 즉 6개의 공기-유리면이 있어, 8개의 면이 있는 더블가우스에 비해 플래어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나의 망원렌즈 효과로 렌즈의 길이가 잛아, 소형화를 추구하던 라이카와 콘택스 35mm 거리계연동카메라에 더 적합한 측면도 있다.
최대구경이 점점 커짐에따라, 더블가우스(Double Gauss)의 고대칭성이 수차보정에 유리했다. 특히 SLR의 경우, 거리계연동(rangefinder)와는 달리 시차오차가 없어, 보다 가까운 곳까지(1미터 수준에서 50cm 수준으로) 초점을 잡을 수 있게 됨으로써 특히 중요하게 되었다. 더블가우스는 반사방지 코팅과 새로이 등장한 고굴절 희토류 유리 덕분으로 1950년대 표준렌즈 설계에 널리 사용되었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한개의 파장만 반사를 억제 하는 것이 아니라, 10여개 이상의 화학물질 층을 이용해 가시광선 영역 전체에 대한 반사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아사히 광학(Asahi Optical)의 SMC Takumar lenses (1971)는 소비자용 카메라(M42 마운트 펜탁스 SLR)를 위한 최초의 멀티코팅렌즈 였다. 멀티코팅이 없었다면 현대의 15매, 20매짜리 고보정 줌렌즈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출시되고 있는 멀티코팅 렌즈의 투과 효율은 약 99.7% 이상이다.
반사방지 코팅 여부에 관계없이 플래어를 막기위해서는 렌즈 후드가 계속 필요하다.
일반적인 광각렌즈(초점거리가 촬상면 대각선 길이보다 짧고 화각이 넓은 렌즈)는 필름 가까이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SLR은 거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렌즈가 훨씬 앞쪽에 설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35mm 거리연동계 카메라의 경우 렌즈와 촬상면의 간격이 10mm 면 충분하지만, 35mm SLR은 40mm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복잡한 역초점 설계방식의 렌즈 개발이 촉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렌즈 맨 앞에 아주 큰 오목렌즈를 설치해야한다.
1950년 앙제닉스(Angénieux, 프랑스)의 Retrofocus Type R1 35mm f/2.5가 최초의 35mm SLR(Exaktas)용 역초점(retrofocus) 광각렌즈이다. 전면 오목렌즈를 제외한다면, 피에르 앙제닉스(Pierre Angénieux) 사의 R1 렌즈는 5매짜리 테사르(Tessar) 렌즈이다. 참고로, "역초점(retrofocus)"은 독점권이 해제되기 전까지 앙제닉스 사의 상표였다. 원래의 일반적 용어는 "역(inverted)" 또는 "역망원(reversed telephoto)"이었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볼록렌즈, 후면에 오목렌즈가 있는 반면, 역초점렌즈는 전면에 오목렌즈, 후면에 볼록렌즈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역초점(retrofocus) 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35mm f/2 (1931) 이었다. 이 렌즈는 RGB를 각각 별도의 음화로 촬영했던 Technicolor 무비카메라를 위하여, beamsplitter 프리즘을 넣을 수 있도록 back-focus 공간을 확보하는 목적이었다. 기타 앙제닉스 역초점 렌즈로는 "28mm f/3.5 Type R11(1953)" 과 "24mm f/3.5 Type R51(1957)" 등이 있었다.
역초점(Retrofocus)렌즈는 전면의 대형 오목렌즈로 인해 비대칭성이 크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왜곡을 보정하기 힘들다. 장점이라면 일반 광각렌즈의 사선방향으로 cos4θ 만큼 빛이 감쇄되는 비네팅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역초점 설계는 일반 렌즈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가 설계한 Contax IIA (1950) 35mm RF 용 Zeiss Biogon 21mm f/4.5(1954) 렌즈와, 그 개정버전인 Zeiss Hologon 15mm f/8(1969), 최종버전인 Zeiss Ikon Hologon Ultrawide 는 대략 대칭에 가까웠으나, 반쪽씩 뜯어보면 역초점렌즈라고 할 수 있었다. Biogon과 Hologon 렌즈는 대형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자연 비네팅 현상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110도의 화각을 가진 Hologon은 구석에서 3¼ 만큼 빛이 감쇄되었을텐데, 이는 그 당시 필름의 노출 제한폭을 초과한 것이다. Hologon에는 이를 보정하기 위해 방사선방향으로 2 스톱만큼 어두워지는 필터를 표준 악세서리로 제공했다. Hologon의 렌즈 뒷면과 필름간의 거리는 4.5mm에 불과했다.
요즘 나오는 디지털 SLR용 표준 원근감렌즈(normal perspective lense)는 역초점인 경우가 많다. 이미지 센서가 35mm보다 작기 때문에 동일한 화각을 유지하려면 초점 거리가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안렌즈(fisheye lens)는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을 거의 보정하지 않는 특별한 종류의 초광각 역초점 렌즈이다. 대부분의 어안렌즈는 화각이 180°인 원형영상을 촬영한다. 어안(fisheye)이란 물고기가 하늘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최초의 어안렌즈는 1923년의 Beck Hill Sky이다. 로빈힐(Robin Hill)의 원래 의도는 구름분포의 과학적 연구를 위하여 하늘을 반구 형태로 촬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불룩 튀어나온 오목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여 180° 화각을 60° 로 압축한 후, 그 빛이 조리개를 통과하여 적당한 광각렌즈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이 스카이(Sky) 렌즈는 21mm f/8 으로, 지름 63mm의 상을 생성했다. 영국 기상청(British Meteorological Office)에서는 이러한 렌즈를 500미터 간격으로 2개 설치하여 입체영상을 촬영했다.
참고로 빛 감쇄(light falloff)로 인하여 180도 직교사진은 촬영할 수 없다. 120° (35mm 카메라에서는 초점거리 12mm)가 역초점 설계의 실질적 한계이며, 역초점이 아닌 경우에는 90° (초점거리 21mm)가 한계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접사사진(macrophotography)은 영상의 크기가 실물과 동등한 사진(1:1)으로부터 영상이 실물보다 10-20 배 큰 사진 (20:1, 그 이상은 현미경사진)을 촬영하는 기술적 사진을 말한다. 원래 "마크로" 렌즈는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도록 최적화된 일반적 공식의 렌즈로서, 근접 하여 초점을 잡고 멀리 있는 물체는 초점이 잡히지 않도록 긴 확장 튜브나 주름상자 악세서리에 장착하여 촬영하였다.
그러나 1955년 35mm SLR인 Exakta 용으로 개발된 Kilfitt Makro-Kilar 4 cm f/3.5(서독) 렌즈가 마크로 렌즈의 의미를 바꾸어버렸다. 이 렌즈는 연속 근접 초점이 가능한 최초의 렌즈이다. 하인즈 킬피트(Heinz Kilfitt)에서 개발한 Makro-Kilar 렌즈 버전 D는 무한대로부터 5cm 에서 1:1 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고 버전 E는 10cm 에서 1:2(실물 크기의 반)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다. Makro-Kilar 렌즈는 매우 긴 삼열 나선(extra long draw triple helical)에 장착된 테사르 렌즈이다. SLR 카메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뷰파인더 시차오차가 없기 때문에 마크로 렌즈와 아주 잘 어울린다.
접사렌즈 설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영상의 크기가 피사체와 비슷하면 대칭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1904년 Goerz Apo-Artar 사진제판(photoengraving) 처리 렌즈는 아주 엄밀한 품질관리가 필요했으나,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였다. 이 렌즈는 무한대에서 접사까지 날카로운 영상을 얻을 수 있었는데, (Makro-Kilar 이전엔 힘들었음) 일반적으로 1:10에 가까워지면 연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SLR은 높은 배율에 최적화된 중구경 마크로 렌즈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동가능 거리가 좀 더 긴 대신, Makro-Kilar 보다 초점거리가 긴 경향이 있다.
"마크로 줌" 렌즈는 1970년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이 렌즈들이 기술적 정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접사렌즈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1:4 이상 확대되지 않는데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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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와 일안반사식카메라 1, 2 그리고 이안반사식 카메라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
카메라 렌즈의 역사 및 기술 개발(History and technical development of photographic camera lenses)
완벽한 렌즈라면 한점을 한점으로 (상대적 공간에서 절대적 정확도 이내로) 상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크기나 무게, 비용 등 실질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물리학 법칙, 우리 지식의 한계, 공법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완벽한 렌즈는 불가능하다. 카메라 렌즈 역사중 최초의 100년은 렌즈의 여러가지 렌즈 수차(optical aberration)를 무난한 정도 까지 떨어뜨리면서, 광학 지식이 천천이 축적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100년은 그 지식을 기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렌즈가 다양해지면서도 다재다능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아래에 있는 그림에서 렌즈 곡률이나 간격 등은 모두 개략적이다. 재료도 유리가 아닐 수도 있다. 즉, 이 그림만으로는 실제 렌즈를 제작할 수 없다. 참고로, 렌즈의 이름은 모두 상표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중 많은 렌즈가 아직 지적재산권에 걸려 있는 상태로, 이 글에서는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한다.
초기의 카메라 렌즈(The earliest photographic camera lenses)
카메라 렌즈의 역사는 월라스톤(Wollaston)의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로부터 시작된다. 1804년 영국의 윌리엄 월라스톤(William Hyde Wollaston)은 1매짜리 메니스커스 렌즈(Meniscus lens, 요철렌즈)를 발명하였다. 처음에는 안경에 사용되었다. (자신이 원시라면 안경알을 시험해 보시길) 이 렌즈는 상당히 넓은 범위(f/16에서 약 50° 정도)에서 어느 정도 뚜렷한 상을 맺는 최초의 렌즈였다. 월라스톤은 1812년 이 렌즈를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장착시켰다.
메니스커스 요철렌즈는 오목한 면을 앞쪽으로 하고 그 앞에 조리개를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사진용 렌즈로 불리우게 되었다. 프랑스의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최초의 사진 기법인 "heliography"을 시험한 몇몇 카메라 옵스큐라에 이 렌즈를 부착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역사 참조) 메니스커스 렌즈는 1550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스타(Giambattista della Porta)가 카메라 옵스큐라에 부착한 간단한 양면볼록렌즈(biconvex lens)의 한계였던 상면만곡(field curvature)을 해결하였다. 참고로, 니엡스는 1828년까지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다. 즉, 1827년 경 역청(bitumen)을 사용한 최초의 사진을 촬영할 때는 양면볼록 렌즈를 사용했다. 메니스커스 렌즈는 코닥의 베스트셀러였던 브라우니(Brownie)와 같이 간단한 박스형 사진기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월라스톤의 메니스커스 (Meniscus, 요철)렌즈
니엡스와 루이스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프랑스)는 동일한 업자(샤를 세발리에, Charles Chevalier, 프랑스)로부터 렌즈를 공급받았다.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사진도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하여 실험하였다. 하지만, 유리는 빨강 스펙트럼에서 파랑 스펙트럼으로 갈수록 굴절률(refractive index)이 커지고, 그 결과 파란색은 앞쪽에 초점이 맺히고, 빨강색은 상 주변에 무지개 장식 같은 얼룩을 만들게 된다. 이는 색 수차(chromatic aberration)에 의한 영향이다. 메니스커스 렌즈에는 이와 같은 색 수차를 보정할 방법이 없어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다게레오타입은 파란색에 감광하는데, 사람의 눈은 주로 노란색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세발리에(Chevalier)는 1829년 돌랜드(Dollond)의 아크로매트 이중렌즈(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원래는 망원경용)를 사용하도록 제안했다. 이 렌즈는 원래 메니스커스 렌즈보다 선명도가 떨어졌지만, 굴절률이 낮고 분광(dispersion)이 낮은 크라운(crown (소다석회, soda-lime)) 렌즈와 굴절률이 높고 분광(dispersion)도 높은 플린트(flint (납, lead)) 렌즈를 결합함으로써, 개별 색수차를 상쇄시키고 파란색과 노란색을 한군데에서 초점이 맞도록 한 렌즈이다.
현대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약 1900년 이후)는 파란색과 빨간색-특히 486 / 656 나노미터-을 한 점에 모으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존 돌랜드(John Dollond, 영국)가 1754년에 이 사실을 발견하여,1758년에 영국 왕립 학회(British Royal Society)로부터 코플리 메달(Copley Medal)을 수상하였지만,(1966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색수차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음) 아크로매트(Achromat) 렌즈를 개발한 사람은 1729년 체스터 홀(Chester Moor Hall)이었다.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 렌즈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 렌즈는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공식 다게레오타입 설명서에 지정된 렌즈였다. 세발리에는 1839년 말부터 아크로매트 렌즈에 메니스커스 렌즈를 추가하여, 상면만곡(field curvature)과 색수차(hromatic aberration)를 조절함으로써, 19세기 야외용 표준 렌즈인 아크로매트 풍경(Achromat Landscape)렌즈를 개발하였다.
세발리에의 아크로매트 풍경(Achromat Landscape)렌즈
벳시바르 인물 렌즈(Petzval portrait lens)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최대구경이 f/16 으로, 야외 다게레오타입 촬영에 20-30분 소요될 정도로 느렸다. 그래서 1840년 프랑스 국가산업진흥회(Society for the Encouragement of National Industry)에서는 밝은 렌즈를 국제공모하였다. 조셉 벳시바르(Joseph Petzval, 현재 헝가리)은 광학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수학교수였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의 "인간 컴퓨터(human computer)"의 도움을 받아 다게레오타입 인물촬영(daguerreotype portrait)에 적합할 정도로 빠른 렌즈에 도전하였다.
그는 1840년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 개발에 성공하였다. 전면은 접합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 후면은 간격을 떨어뜨린 아크로매트 렌즈로 구성된 4매 렌즈로, 최초의 대구경(f/3.6) 인물용 렌즈였다. 그늘진 야외에서 다게레오타입 노출시 1-2분 정도 걸렸다. 1851년 개발된 콜로디온(colloidion ) 습판식에 사용할 경우 실내에서도 1-2분 정도로 가능하였다. 하지만 벳시바르 인물렌즈는 다른 렌즈보다 훨씬 우수했음에도 국수주의로 인하여 상을 타지 못했다.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
1841년 다게레오타입 보이그랜더(Voigtländer) 카메라 : source
이 렌즈는 여러 렌즈 회사들이 불법적으로 복사했고, 벳시바르은 피터 보이그랜더(Peter Voigtländer)와 로열티 문제로 추악한 분쟁에 빠져들어 결국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이 인물렌즈가 최초의 수학적 계산에 의한 렌즈였고, 1856년부터는 Hugo Adolph Steinhei(현대독일)에서 근무한 Ludwig von Seidel(현대 독일)에 의해 물리적 계산식이 잘 정립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약 반세기 동안 사진렌즈는 시행착오법을 통해 개발되었다. 렌즈 발전에는 퇴행적인 손해였다.
광학수차의 극복(Overcoming optical aberrations)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또한 직선이 곡선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 왜곡이 아주 심했다. 사진이 개발된 초기에는 촬영시간이 오래 걸려 음직이지 않는 건물이 아주 중요한 사진 주제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 당시는 그림엽서가 19세기 중반에 개발되었을 정도로, 가보기 힘든 곳의 사진(특히 입체사진)은 안락한 집에서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기가 좋았다. 왜곡은 화각이 커질 수록 급격히 나빠졌다. 따라서 아크로매트 풍경렌즈는 광각 렌즈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광각렌즈(최대 92°, 실용적으로는 80°)는 1892년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미국) 이었으나, 최대구경이 f/16(실용적으로는 f/30)에 불과했다.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가 개발한 글로브 렌즈는 4매의 대칭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일 바깥쪽 면을 확장하면 완전한 구가 된다.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1850년, 대칭(Symmetry)을 사용하면 깨끗한 상을 방해하는 일곱가지 렌즈 수차(5가지 모노크롬 "자이델(Seidel)수차" (구면수차(spherical), 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와 2가지 색수차(축방향(axial) 및 횡방향(transverse))중에서 3개의 수차(직선왜곡, 코마, 횡방향 색수차)가 자동적으로 보정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제조상의 결함으로 인하여 중심이탈(decentration) 수차도 발생한다. 즉, 렌즈가 사양에 따라 제작되지 않았거나, 위치가 어긋나면 기대한 품질을 얻을 수 없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연마불량 혹은 위치 불량에 한층 민감해진다.
영상의 품질을 떨어뜨리지만 수차 혹은 오류가 아닌 광학 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cos4θ만큼 상이 어두워지는 자연 비네팅(natural vignetting) 현상이나, 광각렌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가장자리 확대현상, 혹은 건물이 사다리꼴로 나타나는 현상 등은 3차원 피사체를 2차원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효과일 뿐, 물리적 오류가 아니다.
글로브 렌즈의 대칭식은 달메이어(Dallmeyer) Rapid-Rectilinear 렌즈와 슈타인하일(Steinheil) Aplanat 렌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우연히도 존 달메이어(John Dallmeyer)의 Rapid-Rectilinear 와 아돌프 슈타인하일(Adolph Steinheil)의 Aplanat는 거의 동일한 4매 대칭식으로, 1866년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들 렌즈는 구면수차(spherical) 및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학수차를 제거한 f/8 렌즈였다. 굴절률(refractive index) 차이를 최대로 하되, 각 아크로매트에서 분광(dispersion)을 동일하게 유지한 것이 돌파구였다. Rapid-Rectilinear 과 Aplanat 은 그 당시 모든 필름 포맷에 대해 초점거리와 화각에 확장가능했으므로 이후 약 50년간 표준적인 중구경 범용렌즈로 사용되었다.
달메이어(Dallmeyer) Rapid-Rectilinear 렌즈와 슈타인하일(Steinheil) Aplanat 렌즈
아크로매트 풍경 렌즈(Landscape), 벳시바르 인물렌즈(Portrait),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및 Rapid-Rectilinear/Aplanat 등 4개의 렌즈는 19세기 사진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했던 렌즈였다.
조리개(Aperture stops)
조리개가 영상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1500년대에 알려졌다. 조리개구경이 너무 작아 회절이 심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조리개를 쓰면 여러가지 횡방향 수차(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 및 횡방향 색수차(lateral chromatic)를 일으키는 주변부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렌즈는, 횡방향 수차와 회절이 타협하는 중간정도의 구경에서 최상의 품질을 생성한다.
따라서 심지어 메니스커스(Meniscus)렌즈조차 영구적인 조리개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의 렌즈에 있는 조리개는 조정기능이 없었다. 작동되는 구경자체가 작은데다, 다게레오타입은 민감도가 낮아서 몇 분씩 노출해야했기 때문이다. 사진사들은 입사광을 줄임으로써 노출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1951년 콜로디온 습판식(wet colloidion process)이 개발되면서 노출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졌고, 이에 따라 조리개조절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조리개는 1858년의 존 워터하우스(John Waterhouse)의 이름을 딴 워터하우스 스톱(Waterhouse stop)이었다. 동판에 정해진 크기의 구멍이 뚫어진 형태로, 렌즈 옆에 있는 홈에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Dallmeyer Soft Focus Series B 렌즈와 워터하우스 스톱(좌측은 삽입된 모습)
1880년 경, 사진사들은 구경 크기가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조리개 조절기능이 훨씬 중요해졌고, 조절가능한 조리개가 표준 렌즈 기능이 되었다. 1880년대 아이리스 조리개(iris diaphragm)가 최초로 등장했고, 1900년대에는 표준 조리개가 되었다. 아이리스 조리개는 그 이전 19세기 초부터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널리 사용되었고, 니엡스(Niépce)도 실험용 카메라에서 한번 이상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대식 렌즈에 사용되고 있는 조리개는 1858년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에 의해 개발되었다. 해리슨과 슈나이처의 조리개는 열고 닫는 속도가 빨랐고, 이는 자동 조리개 카메라용 렌즈에 필수가 되었다.
현대 렌즈 조리개의 f값은 f/1, 1.4, 2, 2.8, 4, 5.6, 8, 11, 16, 22, 32, 45, 64, 90 등으로 표시되는데,1949년에 표준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영국식 시스템과 독일식 ( f/1.1, 1.6, 2.2, 3.2, 4.5, 6.3, 9, 12.5, 18, 25, 36, 50, 71, 100 등)이 경쟁했었다. 또한 통일 시스템(Uniform System, 미국, 영국에서 발명됨)은 1, 2, 4, 8, 16, 32, 64, 128 등(여기에서 미국1 = f/4, 미국2 = f/5.6, 미국4 = f/8 등)으로 표기했는데 20세기초 이스트만 코닥에서 선호하였다.
망원렌즈(The telephoto lens)
1매의 요소로 구성된 렌즈는 렌즈의 길이와 초점거리가 같다. 예를 들어 초점거리 500mm 렌즈는 렌즈부터 촬상면까지의 거리가 500mm이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확대 렌즈(군), 후면에 축소렌즈(군)를 조합하여 명목상의 초점거리보다 짧게 만든 렌즈이다. 즉, 전면부에서는 상을 과대굴절시키고, 후면에서 초점면을 회복함으로써 백포커스 길이(back-focus length, 렌즈 후면 정점으로부터 초점면까지의 거리)를 매우 단축시킨 것이다. 원래는 일반렌즈의 뒤에 부착할 수 있는 오목렌즈가 악세서리로 판매되었다. 1833년 피터 발로우(Peter Barlow)가 개발한 오목 색지움 확대렌즈(negative achromat magnifier)인 발로우 렌즈(Barlow lens)는 현재도 아마추어 망원경의 접안렌즈 배율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망원컨버터(teleconverter)가 발로우 렌즈이다.
1891년 토마스 달메이어(Thomas Dallmeyer)와 아돌프 미테(Adolph Miethe)는 전면에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후면에 아크로매트 삼중(achromat triplet)렌즈로 구성된 망원렌즈를 거의 동시에 동일한 수식과 함께 특허를 내려고 시도하였다. 누가 먼저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둘다 최초의 망원렌즈 특허를 받지 못했다.
달메이어(Dallmeyer)와 미테(Miethe)의 망원렌즈
초기의 망원렌즈는 전면부와 후면부가 균형잡히지 않았고, 후면부가 영상뿐만 아니라 수차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전.후면부 간격을 조정함으로써 유효초점거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이는 수차문제를 악화 시켰을 뿐이었다. 광학적으로 보정되고 시스템으로 확립된 최초의 망원렌즈는 1905년 f/8 Busch Bis-Telar(독일) 이었다.
Busch Bis-Telar
현대식 비점수차보정렌즈(The "modern" anastigmat lens)
사진렌즈는 1890년, 자이스(Zeiss, 독일)가 프로타르(Protar)를 개발하면서 한단계 도약하게 된다. 폴 루돌프(Paul Rudolph)의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성공적인 비점수차보정렌즈로, 당시 기준으로 비점수차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수차를 높은 수준으로 보정하였다. 이 렌즈는 f/4.5 인물용부터 f/18 초광각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 프로타르(Protar) 렌즈는 처음엔 Anastigmat(비점수차제거렌즈)라고 불렸으나, 이런 특성의 렌즈가 많아져 일반적인 용어가 되자, 1900년에 프로타르라는 기발한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자이스 프로타르(Protar)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현대식"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산화바륨(barium oxide) 기반의 크라운 유리(optical crown glass, 저굴절, 저분산 특성의 유리)를 사용하면서 비대칭 공식(asymmetric formula)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유리는 1884년, 칼 자이스(Carl Zeiss)의 Jena Glass Works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와 화학자 오토 쇼트(Otto Schott)가 개발하였다. 이 쇼트 유리는 소다석회 크라운 유리(soda-lime crown glass) 보다 분산은 낮고 굴절률은 높았다. 프로타르의 전면부는 예전 유리를 사용했으나, 후면부 아크로매트(색지움)렌즈는 고굴절 유리를 사용했다. 약 1930년대 이후에 생산된 거의 모든 고품질 사진렌즈는 비점수차가 보정되는 렌즈이다.
현재의 최첨단 카메라 렌즈는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ic)보다 대충 두배 정도 더 엄밀한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 APO) 이다. 하지만 그러한 렌즈들은 원래의 일곱가지 수차보다 훨씬 더높은 수준의 수차를 보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고굴절/저분산 희토류(산화 란탄(lanthanum oxide)) 렌즈, 형석(불화 칼슘(calcium fluoride)) 렌즈 등이 필요하다.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삼중색지움렌즈는 1964년 개발된 35mm SLR인 라이카플렉스(Leicaflex) 시리즈용 "Leitz APO-Telyt-R 180mm f/3.4(1975)" 이었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거의 모든 전문가용 망원렌즈는 삼중색지움렌즈이다. 참고로, 과학용/군용/산업용으로는 삼중색지움렌즈보다 더 뛰어난 렌즈도 있다.
쿠크 삼중렌즈(The Cooke Triplet)
20세기 카메라 렌즈의 전형은 Taylor, Taylor & Hobson의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이다. 데니스 테일러(Dennis Taylor, TTH와는 관련없음)가 개발한 쿠크 삼중렌즈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간단한 비대칭 3매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로, 새로운 쇼트(Schott) 유리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렌즈 설계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모든 요소가 너무 강하여 정렬불량에 매우 민감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상당한 제조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쿠크 삼중렌즈는 20세기의 "경제적인 렌즈"의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최고로 많이 팔린 거리계연동 카메라로 추정되는 1937년 미국의 아거스(Argus) C3에 장착된 Argus Cintar 50mm f/3.5 렌즈가 쿠크 삼중렌즈였다.
Taylor, Taylor & Hobson의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
이 렌즈는 중형 롤필름 카메라의 밀착 사진이나, 35mm "미니어처" 포맷 카메라의 부분 확대에 적당하며, 대형 인화는 곤란하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의 필름은 해상도가 높지 않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테사르 렌즈(The Tessar)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타르(Protar) 렌즈의 성능이 불만족스러워 테사르 렌즈를 개발했다. (형태는 쿠크 삼중렌즈와 비슷) 테사르는 원래 f/6.3 이었지만, 1930년에 f/2.8(최고 성능은 f/3.5까지)로 개선되었다.
테사르는 고품질/중구경/평균원근감을 갖는 20세기 표준렌즈였다. 최초의 자동노출 카메라인 코닥(Kodak) Super Six-20 (1938)에 장착된 "Kodak Anastigmat Special 100mm f/3.5"가 테사르 렌즈였다. 또한 올림푸스의 오리지날 half frame 카메라인 Olympus Pen (1959)에 장착된 "D. Zuiko 2.8 cm f/3.5", 최신 롤라이(Rollei) 35(1974)에 장착된 "슈나이더(Schneider) S-Xenar 40mm f/3.5", 주류 카메라회사의 마지막 수동초점 35mm SLR인 Nikon FM3A (2001)에 장착된 "AF Nikkor D 45mm f/2.8P Special Edition" 등도 Tessar 렌즈였다. Zeiss Stiftung의 마지막 카메라인 Zeiss Ikon S 312에 "Zeiss Tessar 40mm f/2.8 (1972)"이 채택된 것은 썩 어울리는 일이었다.
자이스 테사르(Zeiss Tessar)
라이츠(Leitz) 최초의 카메라인 Leica A (1925)에 장착된 "라이츠 엘마(Leitz Elmar) 50mm f/3.5"가 테사르(Tessar)라는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 라이카에선 18x24mm 무비카메라용 50mm f/3.5 Kino Tessar 를 개발했었고, 이것이 새로운 24x36mm 포맷에는 불충분했기 때문에 풀프레임을 지원하는 렌즈를 새로 개발해야했다. 50mm 테사르 렌즈가 24x36mm 포맷을 지원하게 된 것은 라이카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자이스 이콘(Zeiss Ikon)에서 콘택스(Contax)를 설계한 이후의 일이다. 엘마(Elmar)는 테사르(Tessar)와는 다른 계산식인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에 기반한 렌즈였다.
에르노스타와 조나(The Ernostar and the Sonnar)
비점수차제거에 의하여 사진 품질이 향상되자, 그 다음으로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거나 셔터 속도를 올릴 수 있도록 구경을 키우는데로 관심이 쏠리게되었다. 자연광 스냅사진(candid available light photography)에 적합한 최초의 광각렌즈는 1923년 에르네만 에르노스타(Ernemann Ernostar, 독일)이었다.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의 공식은 원래 10cm f/2 렌즈였으나, 1924년에는 10.5 cm/85mm f/1.8 까지 향상 시켰다. 에르노스타 렌즈도 쿠크 삼중렌즈의 변종으로, 렌즈 앞에 볼록렌즈요소 혹은 그룹이 추가된 형태였다.
Ernemann Ernostar 10.5 cm f/1.8
이 렌즈가 에르네만의 에르마녹스(Ermanox,1923) 카메라에 장착되어,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의 손에 들어가면서 현대적인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을 열었다. 프랑스 수상이었던 Aristide Briand 는 "국제회의에는 단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외국어 비서, 책상 그리고 잘로몬이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참고로 미국 사진기자들은 1950년대까지도 플래시를 사용했다.
베르텔레는 1926년 에네르만이 자이스에 합병된 뒤, 좀더 유명한 조나(Sonnar)렌즈라는 이름으로 에론스타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는 1932년 f/1.5까지 도달하여,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인 Contax I (1932)용 Zeiss Sonnar 50mm f/1.5 를 개발하였다.
Zeiss Sonnar 50mm f/1.5
조나(Sonnar)렌즈는 망원렌즈 설계로 유명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조나는 전면 확대부(front positive element)의 강력함으로 인해 약간 망원성이다. 예를 들어 Contax II(1936) 용 Zeiss Olympia Sonnar 180mm f/2.8은 전설에 가까운 명작이다.
비대칭 더블가우스 렌즈(The asymmetric double Gauss)
1817년, 칼 프레드릭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프라운호퍼(Fraunhofer) 망원경 대물렌즈에 메니스커스(meniscus, 요철) 렌즈를 추가하여 개선하였다. 1988년 Alvan Clark는 이 렌즈를 앞뒤로 대는 형태로 좀더 개선하였다. 그는 가우스를 기려 이 렌즈를 더블가우스 렌즈(double Gauss)라고 명명하였다. 현재의 설계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 자이스 예나의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접합 이중렌즈(cemented doublets)를 중심렌즈로 사용하여 색수차를 보정하였다. [플라나(Planar) 렌즈]
이후 넓은 구경의 고성능 렌즈를 위해 렌즈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1920년대 Taylor Hobson에서 성과를 거두었는데, f/2.0 Opic 과 이후의 Speed Panchro는 많은 회사들에 라이선스 되었다. 이 디자인은 현재 사용되는 많은 렌즈의 기반이 된 바, 특히 35mm 및 기타 소형 카메라에 사용되는 대구경 표준렌즈의 기반이 되었다. 넓은 화각에 대해 f/1.4까지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뿐 아니라, 때로는 f/1.0 까지 만들어졌다.
이 디자인은 현재 Canon EF 50mm f/1.8 와 Nikon 50 mm f/1.8D AF Nikkor 와 같이 저비용 고품질의 빠른 렌즈에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렌즈 요소를 추가하여 더 빠른 렌즈의 기반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캐논과 니콘에서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50 mm f/1.4 를, 비구면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Canon's 50 mm f/1.2 를 제작했다. 또한 이 설계는 프로젝터와 같이 간단하고도 빠른 표준렌즈(~53° 대각선)가 필요한 다른 응용에도 나타난다.
반사방지 코팅(Antireflection coating)
표면 반사는 19세기 렌즈 설계시 주요한 한계 요소였다. 모든 유리-공기 접촉면 마다 4-8%의 반사가 발생하여 빛 투과가 줄어들고, 반사된 빛의 산란으로 플래어가 발생함으로써, 6번 혹은 8번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렌즈의 실용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일정한 수 이내의 요소로만 수차를 해결해야만 했었다.
일부 렌즈는 빛 손실을 표시하기 위해 f-stop 대신 T-stop (transmission stop)을 표시하기도 했다. T-stop은 "진짜" 혹은 실질적인 구경을 나타내며 영화용 렌즈에서는 흔했다. 영화 촬영기사들은 영화촬영시 어떠한 렌즈를 사용해도, T-stop을 참고로 일관성있는 노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진용 카메라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Bell & Howell의 Foton 라는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용 렌즈에만 T-stop이 표시되었다. Bell & Howell은 영화촬영장비 제조회사였다. Foton 의 표준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사의 Cooke Amotal Anastigmat 2 inch f/2 (T/2.2) (1948; 카메라는 미국제, 렌즈는 영국제, 더블가우스) 였다. f/2 와 T/2.2 사이의 1/4 스톱 차이는 16% 손실이었다.
데니스 테일러는 1896년, 세월이 흘러 변색된 렌즈가 직관과는 달리 더 밝아지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사결과 그것은 산화된 층이 상쇄간섭(destructive interference)을 일으켜 표면반사가 억제된 것이었다. 표면반사를 억제하기 위하여 아주 얇은 두께(약 130-140 nm)의 불화마그네슘 또는 불화 칼슘을 진공 침전(vacuum deposition) 방법으로 코팅한 렌즈를 발명한 것은 1935년 자이스의 알렉산더 스마쿨라(Alexander Smakula)였으며, 1939년 최초로 시판되었다. 반사코팅방지 코팅은 반사를 1/3로 줄여주었다.
1941년 코닥의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 Ektra 는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완벽한 반사방지 렌즈 라인인 Kodak Ektar 35mm f/3.3, 50mm f/3.5, 50mm f/1.9, 90mm f/3.5, 135mm f/3.8 and 153mm f/4.5 를 발표하였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소비자용 카메라 생산이 중단되어, 1940년대 말까지는 대량의 코팅렌즈는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부터는 코팅렌즈가 고품질 카메라의 표준이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이 등장하자 조나(Sonnar)렌즈에 비해 더블가우스(Double Gauss)가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기술이 없었던 이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조나가 더 널리 사용되었다. 조나의 경우 3군. 즉 6개의 공기-유리면이 있어, 8개의 면이 있는 더블가우스에 비해 플래어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나의 망원렌즈 효과로 렌즈의 길이가 잛아, 소형화를 추구하던 라이카와 콘택스 35mm 거리계연동카메라에 더 적합한 측면도 있다.
최대구경이 점점 커짐에따라, 더블가우스(Double Gauss)의 고대칭성이 수차보정에 유리했다. 특히 SLR의 경우, 거리계연동(rangefinder)와는 달리 시차오차가 없어, 보다 가까운 곳까지(1미터 수준에서 50cm 수준으로) 초점을 잡을 수 있게 됨으로써 특히 중요하게 되었다. 더블가우스는 반사방지 코팅과 새로이 등장한 고굴절 희토류 유리 덕분으로 1950년대 표준렌즈 설계에 널리 사용되었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한개의 파장만 반사를 억제 하는 것이 아니라, 10여개 이상의 화학물질 층을 이용해 가시광선 영역 전체에 대한 반사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아사히 광학(Asahi Optical)의 SMC Takumar lenses (1971)는 소비자용 카메라(M42 마운트 펜탁스 SLR)를 위한 최초의 멀티코팅렌즈 였다. 멀티코팅이 없었다면 현대의 15매, 20매짜리 고보정 줌렌즈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출시되고 있는 멀티코팅 렌즈의 투과 효율은 약 99.7% 이상이다.
반사방지 코팅 여부에 관계없이 플래어를 막기위해서는 렌즈 후드가 계속 필요하다.
역초점 광각렌즈(The retrofocus wide angle lens)
일반적인 광각렌즈(초점거리가 촬상면 대각선 길이보다 짧고 화각이 넓은 렌즈)는 필름 가까이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SLR은 거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렌즈가 훨씬 앞쪽에 설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35mm 거리연동계 카메라의 경우 렌즈와 촬상면의 간격이 10mm 면 충분하지만, 35mm SLR은 40mm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복잡한 역초점 설계방식의 렌즈 개발이 촉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렌즈 맨 앞에 아주 큰 오목렌즈를 설치해야한다.
1950년 앙제닉스(Angénieux, 프랑스)의 Retrofocus Type R1 35mm f/2.5가 최초의 35mm SLR(Exaktas)용 역초점(retrofocus) 광각렌즈이다. 전면 오목렌즈를 제외한다면, 피에르 앙제닉스(Pierre Angénieux) 사의 R1 렌즈는 5매짜리 테사르(Tessar) 렌즈이다. 참고로, "역초점(retrofocus)"은 독점권이 해제되기 전까지 앙제닉스 사의 상표였다. 원래의 일반적 용어는 "역(inverted)" 또는 "역망원(reversed telephoto)"이었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볼록렌즈, 후면에 오목렌즈가 있는 반면, 역초점렌즈는 전면에 오목렌즈, 후면에 볼록렌즈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역초점(retrofocus) 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35mm f/2 (1931) 이었다. 이 렌즈는 RGB를 각각 별도의 음화로 촬영했던 Technicolor 무비카메라를 위하여, beamsplitter 프리즘을 넣을 수 있도록 back-focus 공간을 확보하는 목적이었다. 기타 앙제닉스 역초점 렌즈로는 "28mm f/3.5 Type R11(1953)" 과 "24mm f/3.5 Type R51(1957)" 등이 있었다.
앙제닉스(Angénieux)의 Retrofocus Type R1 35mm f/2.5
역초점(Retrofocus)렌즈는 전면의 대형 오목렌즈로 인해 비대칭성이 크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왜곡을 보정하기 힘들다. 장점이라면 일반 광각렌즈의 사선방향으로 cos4θ 만큼 빛이 감쇄되는 비네팅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역초점 설계는 일반 렌즈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가 설계한 Contax IIA (1950) 35mm RF 용 Zeiss Biogon 21mm f/4.5(1954) 렌즈와, 그 개정버전인 Zeiss Hologon 15mm f/8(1969), 최종버전인 Zeiss Ikon Hologon Ultrawide 는 대략 대칭에 가까웠으나, 반쪽씩 뜯어보면 역초점렌즈라고 할 수 있었다. Biogon과 Hologon 렌즈는 대형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자연 비네팅 현상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110도의 화각을 가진 Hologon은 구석에서 3¼ 만큼 빛이 감쇄되었을텐데, 이는 그 당시 필름의 노출 제한폭을 초과한 것이다. Hologon에는 이를 보정하기 위해 방사선방향으로 2 스톱만큼 어두워지는 필터를 표준 악세서리로 제공했다. Hologon의 렌즈 뒷면과 필름간의 거리는 4.5mm에 불과했다.
Zeiss Biogon 21mm f/4.5
요즘 나오는 디지털 SLR용 표준 원근감렌즈(normal perspective lense)는 역초점인 경우가 많다. 이미지 센서가 35mm보다 작기 때문에 동일한 화각을 유지하려면 초점 거리가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안렌즈(The "fisheye" lens)
어안렌즈(fisheye lens)는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을 거의 보정하지 않는 특별한 종류의 초광각 역초점 렌즈이다. 대부분의 어안렌즈는 화각이 180°인 원형영상을 촬영한다. 어안(fisheye)이란 물고기가 하늘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최초의 어안렌즈는 1923년의 Beck Hill Sky이다. 로빈힐(Robin Hill)의 원래 의도는 구름분포의 과학적 연구를 위하여 하늘을 반구 형태로 촬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불룩 튀어나온 오목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여 180° 화각을 60° 로 압축한 후, 그 빛이 조리개를 통과하여 적당한 광각렌즈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이 스카이(Sky) 렌즈는 21mm f/8 으로, 지름 63mm의 상을 생성했다. 영국 기상청(British Meteorological Office)에서는 이러한 렌즈를 500미터 간격으로 2개 설치하여 입체영상을 촬영했다.
Beck Hill Sky
참고로 빛 감쇄(light falloff)로 인하여 180도 직교사진은 촬영할 수 없다. 120° (35mm 카메라에서는 초점거리 12mm)가 역초점 설계의 실질적 한계이며, 역초점이 아닌 경우에는 90° (초점거리 21mm)가 한계이다.
접사(마크로) 렌즈(The macro lens)
엄격하게 말하자면, 접사사진(macrophotography)은 영상의 크기가 실물과 동등한 사진(1:1)으로부터 영상이 실물보다 10-20 배 큰 사진 (20:1, 그 이상은 현미경사진)을 촬영하는 기술적 사진을 말한다. 원래 "마크로" 렌즈는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도록 최적화된 일반적 공식의 렌즈로서, 근접 하여 초점을 잡고 멀리 있는 물체는 초점이 잡히지 않도록 긴 확장 튜브나 주름상자 악세서리에 장착하여 촬영하였다.
그러나 1955년 35mm SLR인 Exakta 용으로 개발된 Kilfitt Makro-Kilar 4 cm f/3.5(서독) 렌즈가 마크로 렌즈의 의미를 바꾸어버렸다. 이 렌즈는 연속 근접 초점이 가능한 최초의 렌즈이다. 하인즈 킬피트(Heinz Kilfitt)에서 개발한 Makro-Kilar 렌즈 버전 D는 무한대로부터 5cm 에서 1:1 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고 버전 E는 10cm 에서 1:2(실물 크기의 반)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다. Makro-Kilar 렌즈는 매우 긴 삼열 나선(extra long draw triple helical)에 장착된 테사르 렌즈이다. SLR 카메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뷰파인더 시차오차가 없기 때문에 마크로 렌즈와 아주 잘 어울린다.
Kilfitt Makro-Kilar 4 cm f/3.5
접사렌즈 설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영상의 크기가 피사체와 비슷하면 대칭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1904년 Goerz Apo-Artar 사진제판(photoengraving) 처리 렌즈는 아주 엄밀한 품질관리가 필요했으나,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였다. 이 렌즈는 무한대에서 접사까지 날카로운 영상을 얻을 수 있었는데, (Makro-Kilar 이전엔 힘들었음) 일반적으로 1:10에 가까워지면 연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SLR은 높은 배율에 최적화된 중구경 마크로 렌즈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동가능 거리가 좀 더 긴 대신, Makro-Kilar 보다 초점거리가 긴 경향이 있다.
"마크로 줌" 렌즈는 1970년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이 렌즈들이 기술적 정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접사렌즈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1:4 이상 확대되지 않는데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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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와 일안반사식카메라 1, 2 그리고 이안반사식 카메라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